밤이 되면 / 유공희 밤이 되면 / 유공희 서쪽 하늘에 고운 노을 사라지고 별처럼 이집 저집 등불이 켜지면 내 가슴은 고요히 고독의 품에 안긴다 멀고 먼 옛날 풀밭 위의 낮꿈과도 같이 창틈으로 별이 손짓하면 내 눈앞에는 송이송이 옛날의 꽃이 핀다 밤이 되면 나를 인도하는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그 손 밤이 되면 무..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1
길 / 유공희 길 / 유공희 흩어진 머리털 그대로 두고 날리는 치마폭 그대로 두고 혼자 말없이 걸어갔을 길 어두운 밤 깜박이는 환영(幻影)의 불빛 따라 그 발자욱 찾아 걸어가는 길 그 눈물 밟아 걸어가는 길 가도 가도 끝없는 이 길 위에 쓰러진 채 눈을 감으려냐? 넋아! 젖은 눈 앞 별의 손가락 모인 곳에 흩어진 머..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0
들국화 / 유공희 들국화 / 유공희 가을바람 살살 스며드는 언덕 밑에 외로이 핀 들국화 꿈에서 본 나비가 그리워 호사하고 나섰습니다 짱아는 푸른 하늘에 붉은 시를 쓰고 귀뚜라미는 풀 속에 숨어 밤마다 울음 섞인 소리로 진정을 노래하건만 들국화는 남쪽 하늘만 쳐다보고 한숨만 쉽니다.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19
잃어짐 / 유공희 잃어짐 / 유공희 마음 닿는 곳마다 고독이 그림자처럼 앞서 마음 둘 곳 없이 야윈 눈만 감고 뜨고 하던 밤 이건 또 무슨 착천(錯舛)이랴 신경질인 귀뚜라미 한 마리 노래를 잃고 방안을 헤매이다 무슨 인연으로 남루(襤褸)한 악몽(惡夢) 속에 태어나 여기에 허망히 공간을 자리잡은 슬픈 두 기태(奇態) ..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17
벽 2 / 유공희 벽(壁) 2 / 유공희 나는 저기저 빨간 조약돌을 집고 싶어 집고 싶어 벼르다 벼르다 이 길고 긴 담벽에 구멍이 나도록… 너희들은 새긴다 이 하얀 담벽에 몇 천년 묵은 달팽이를… 나는 몸을 돌리면 몸을 돌리면 황금빛 바람이 달음질치는 동그란 구멍만 남으리 어젯밤 어디선지 샘물 소리가 샘물 소리가..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14
벽 / 유공희 벽(壁) / 유공희 조약돌 도글도글 멀고 먼 전설을 속삭이고 황량한 들에는 이곳저곳 발자욱만 새로워 어느 돌 틈에선지 새빨간 꽃을 잡아 뜯던 날 우리 집 뜰 안에는 낯모를 소녀가 찾아왔노라 오, 나의 방 하얀 벽에 처음으로 귀를 대던 날 벽이여, 너는 나에게 얼굴을 보이고 이름을 얻었도다 아침 햇..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13
꽃버섯 / 유공희 꽃버섯 / 유공희 ― 동요 꽃버섯! 꽃버섯! 꽃버섯! * 이놈은 언니같이 보얗네 이놈은 누이같이 빨갛네 이놈은 나같이 이뻐라 * 언니 우리 빨가벗고 서 볼까? 누이야 우리 빨가벗고 서 볼까? * 꽃버섯, 꽃버섯, 꽃버섯 * 언니 발도 내 발도 누이 발도 * 호, 추워라 홈빡 이슬에 젖었네!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12
나비 / 유공희 나비 / 유공희 어드 메 은은한 한낱 촉화(燭火)에서 태어난 듯 순간의 정적(靜寂)을 더듬어 끝없이 권태(倦怠)한 호수 위에 아직 염염한 어머니 숨결 따라 있을 듯 말 듯 한밤에 눈뜬 얼굴을 비춰 볼려고 넋없이 헤매어 나와 우는 나의 두 날개…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10
해안에 또 하나 다른 나 / 유공희 해안에 또 하나 다른 나 / 유공희 오 나의 전신에 배어오르는 낯설은 냄새여 훨훨 타는 해바라기에 바람처럼 빨리운 나비와도 같이 두 팔을 펴고 달려온 나는 머리 위에 꽃피는 갈매기의 종족이 아니었다 사구(砂丘)에 흐르는 한낱 감탄사에선 맹목(盲目)의 꽃, 무수한 버섯이 피어 노란 온갖 조개알을 ..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