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조개껍질 / 유공희 두 개의 조개껍질 / 유공희 인적(人跡) 없는 바닷가에 흘러간 슬픈 로멘스는 파도소리만이 알고 있단다 그리고 갈매기는 상복(喪服) 입은 큐피트! 돛 하나 안 보이는 끝없는 바닷가 발자욱 하나 없는 하얀 모래밭 위에 보랏빛 조개의 망해(亡骸) 두 개 나란히 누웠다 (1939, 10. 조선일보 학생란 소재)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10.04
귀뚜라미 / 유공희 귀뚜라미 / 유공희 무엇이 너를 배반하였느냐 기나 긴 이 가을밤을 울어 새우려는 귀뚜라미야 한밤중 등잔불 밑에 나타난 신경질인 네 모양은 이단(異端)의 화신(化身)이었다 밤이 새도록 목쉰 소리로 시계를 비웃는 너를… 귀뚜라미야 해가 지도록 망각의 노래에 젖는 매미보다 어리석다 할 거나?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10.01
그대의 하얀 손을 / 유공희 그대의 하얀 손을 / 유공희 그대의 하얀 손이 내게 잡힌다면 이 대지는 곧 움직이리라 그대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보고 웃는다면 나는 곧 저 푸른 하늘로 날으리라 아. 이 부질없는 마음 때문에 나는 눈물을 알았노라 이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나는 또한 명일(明日)을 알았노라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9
향수 1 / 유공희 향수(鄕愁) 1 / 유공희 코스모스 지고 내 다니던 숲 누러졌으리 숲속에 방울새 꾀꼬리 흩어지고 나뭇잎 바스락 바스락 떨어지고 있으리 메뚜기 잡으며 새 보는 어린 누이 넓은 들에 이삭 줍고 있으리 내 홀로 앉아 온종일 바라보던 물레방아 변함없이 돌고 돌고 있으리 흰 구름 동동 떴으리 가을바람 살..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8
매미 / 유공희 매미 / 유공희 땀을 흘리며 노래 부르는 그는 이 땅의 생명이 아니오 당신은 그 칠보(七寶)의 날개를 본 일이 있습니까?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7
손 / 유공희 손 / 유공희 목표도 없이 공간을 더듬다 힘없이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이 그 내 손이 왜 이렇게 슬퍼 보이오? 맥박조차 잃은 듯한 낡은 손이언만 아름답지 않게 비칠 한 쌍의 눈동자도 없는 이 밤 왜 이렇게 납덩이 같은 눈물은 흐르오? 힘을 주면 주먹이 될 듯도 한 손이려니 씻으면 사라진 듯도 한 슬픔..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6
괴로움 / 유공희 괴로움 / 유공희 입을 다물고 꼭 지니고 있거라 내뿜는다면 그나마 다시 서러우리 열할 곳 없이 토한다고 마음 편할 리 없고 내 가슴에 꽃필 리 없으리 입을 다물고 삼켜버려라 가슴속에 소리없이 녹아 낡은 얼굴에 눈물 되어 흐를 때까지 귀여운 나의 얼굴 하늘과 얘기하자.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3
황량 / 유공희 황량(荒凉)/ 유공희 굳은 비 내리는 들 가운데에 홀로 핀 장미와도 같이 그는 아름다웠소 그는 안타까웠소 나는 떨어진 꽃잎만 주워왔소 나는 흩어진 향기만 담아왔소 굳은 비 내리는 밤이면 밤마다 그는 소리도 없이 찾아왔소 그는 정처도 없이 나를 불러냈소 아, 굳은 비 내리는 들 가운데에 가시만 ..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2
밤이 되면 / 유공희 밤이 되면 / 유공희 서쪽 하늘에 고운 노을 사라지고 별처럼 이집 저집 등불이 켜지면 내 가슴은 고요히 고독의 품에 안긴다 멀고 먼 옛날 풀밭 위의 낮꿈과도 같이 창틈으로 별이 손짓하면 내 눈앞에는 송이송이 옛날의 꽃이 핀다 밤이 되면 나를 인도하는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그 손 밤이 되면 무..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1
길 / 유공희 길 / 유공희 흩어진 머리털 그대로 두고 날리는 치마폭 그대로 두고 혼자 말없이 걸어갔을 길 어두운 밤 깜박이는 환영(幻影)의 불빛 따라 그 발자욱 찾아 걸어가는 길 그 눈물 밟아 걸어가는 길 가도 가도 끝없는 이 길 위에 쓰러진 채 눈을 감으려냐? 넋아! 젖은 눈 앞 별의 손가락 모인 곳에 흩어진 머.. 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2007.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