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종 종(鐘) / 임보 산길을 가다 도우(道友)라는 여인을 만났다 방장사(方丈舍)라는 절에서 십여 년 수행을 하다 싱거워 그만 떠나는 길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땡추다 심심하던 터라 이야기 이야기하며 함께 길을 간다 새를 만나면 새 얘기 나무를 만나면 나무 얘기 바람과 구름 달과 별들의 얘기도 이제는 다..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31
[선시] 연지 연지(硯池) / 임보 청계(淸溪) 오동꽃 그늘 아래 십여 평 반석 그 반석 한 귀퉁이는 천연의 연지(硯池)다 이 연지에 먹을 갈다 잠이 들었는가 호호백발(晧晧白髮) 한 노인이 코를 드르렁이며 누워 있다 이 백옹(白翁)의 배꼽 위를 오르내리던 다람쥐 한놈 기웃거리다 이내 연지로 달려간다 어허, 이놈 봐..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30
[선시] 신발 신발 / 임보 노산(露山)과 황주(黃舟)는 다 신발쟁이들이건만 그들의 하는 일은 같지 않다 노산(露山)은 수만 마리의 거미들을 우리 속에 가두어 사육하는데 놈들의 먹이에 금분(金粉)을 넣어 황금의 실을 뽑아낸다 그 거미줄로 엮어 만든 신발을 규(珪)라고 하는데 규를 신은 자는 불 위를 그냥 걸을 수..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29
[선시] 도화밀천 도화밀천(桃花蜜泉) / 임보 자운동(紫雲洞) 골짝은 온통 복숭아꽃 천지다 가도 가도 꽃과 벌들의 세상이다 흐르는 개울물에 목을 적시며 시장끼를 달래는데 그런 내 꼴을 보고 민망했던지 동행하던 목천(木川)이 자신의 발목을 꽉 움켜잡으라 이른다 휙 바람이 일더니 목천(木川)은 하늘로 치솟아 올랐..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26
[선시] 천궁 천궁(千宮)임보 천궁(千宮)은 기생의 이름이다 수많은 선비들이 그를 흠모하나 그의 집 문턱에 이르기는 쉽지 않다 어떤 자는 그를 보기 위해 서화(書畵)로 몇 십 년을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자는 거문고와 술을 익히며 또 그렇게 하기도 한다 곡천(曲川) 고을을 지나다 이 소문을 듣고 그냥 지나치기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23
[선시] 거래 거래(去來) / 임보 이 고을에도 물건을 만들어 판다 사실은 파는 것이라기보다는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보시(布施)다 하기야 돈이 없으니 값을 치를 수도 없지 않는가 바람직하기는 서로의 물건들을 서로 바꾸는 일이지만 그럴 경우는 흔치 않다 더러는 단환(丹丸)* 으로 갚아 고마움의 빚을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22
[선시] 석경 석경(石鏡) / 임보 청석동(靑石洞) 어구 강가에는 석제(石弟)라는 거울 장수가 숫돌에 청석(靑石)을 종일 갈고 있다 손바닥만한 석경들을 만들어 나룻가에 늘어 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물을 건너는 나그네들이 더러 돌거울을 들어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사 가는 자는 거의 없다 어떤 거울인가 싶어 얼..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19
[선시] 비둘기 비둘기 / 임보 월정(月汀)이란 마을의 동구 앞에 이르렀더니 한 노인이 대나무 그늘 아래서 무엇인가를 꿰메고 있다 죽은 비둘기의 터진 등짝을 붙이는 중이었다 독수리 발톱에서 앗아 왔는데 혼이 놀라 벌써 육신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죽어 있던 비둘기가 갑자기 날개를 퍼덕이며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18
[선시] 일자 일자(一字) / 임보 목계(木溪)라는 자를 만나 며칠 동행할 때의 일이다. 월천(月川) 강가에 이르러 잠시 쉬는데 절벽에 한 자 남짓한 길이의 "―"자가 새겨져 있다. 목계(木溪)의 얘기론 여러 천 년 전에 지나던 초공(草公)의 글이라고 한다. 무슨 뜻인가고 물으니 제대로 다 들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흐르..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17
[선시] 운월사 운월사(雲月寺) / 임보 운월사에 오르는 길은 돌계단인데 무척 가파르고 높기도 하다. 한 노승이 사슴을 몰고 가쁜히 밟아 오르기에 나도 뒤를 따랐는데 겨우 십여 계단 올랐을까 다리가 떨리고 숨이 막혀 오를 수가 없다. 그들은 이미 까마득히 사라져 가는데 둬 개 오르다 쉬고 또 둬 개 오르다 쉬고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