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시] 북 / 임보 북 / 임보 북악(北岳) 기슭에는 토문(土門)이란 자가 북과 함께 살고 있는데 한번 두드리면 그 소리가 천 리를 울린다. 남천(南川) 물가에는 지음(至音)이란 자가 비둘기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소리만 듣고도 토문(土門)의 마음을 환히 본다. 북이 울릴 때마다 지음(至音)은 비둘기를 날려 보내 친구의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3.01
[선시] 어익 / 임보 어익(魚翼) / 임보 사부(沙夫)의 낚시줄에는 고기들이 한꺼번에 너댓 마리씩 물려 오르다 공중에서 떨어져 내린다 잠시 지켜보고 있었더니 줄 끝에 낚시는 없고 낚시밥만 매달려 있다 말하자면 낚시줄에 먹이를 달아 고기들에게 나누어 주는 셈이 아닌가 그럴 바엔 줄 끝에 매달 일이 아니라 그냥 던져..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28
[선시] 자작나무에서 돌배나무까지 / 임보 자작나무에서 돌배나무까지 임 보 그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넓은가고 묻기에 동(東)은 아침인데 서(西)는 저녁이고 남(南)은 여름인데 북(北)은 겨울이라고 대답했더니 토공(土公)이 웃는다 그의 집 뜰은 한 십여 평 되는데 하루에 만 리를 달리는 그의 말(馬)도 뜰 좌편의 자작나무 한 가지 끝에서 뜰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27
[선시] 월인(月印) / 임보 월인(月印) / 임보 애를 갖고자 하는 여인들은 사내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보름밤에 용정(龍井)이란 우물가에 앉아서 물 속의 달을 삼키면 배가 불러 온다 태어난 아이는 귀 밑에 용의 비늘을 하나 달고 나오는데 그것이 곧 애비의 징표다.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21
[선시] 비천(飛天) / 임보 비천(飛天) / 임보 홍호(紅湖)는 사방 천 리가 넘는 큰 호수다 파란 물 속에 붉은 산호(珊瑚)의 숲이 노을처럼 피어 있다 물가의 숲에는 인월(引月)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는데 용(龍)을 부리는 자다 (뱀을 길들여 용을 만든다고도 한다) 그가 젓대를 불면 용의 무리들이 물 밑에서 솟아 머리를 내밀기도 ..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20
[선시] 귀 / 임보 귀 / 임보 표(瓢)라는 자는 푸른 눈썹이 3치쯤 돋아 있다 늘 큰 박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데 천년 묵은 고목의 죽은 가지들도 그의 손이 가 닿기만 하면 싹이 다시 돋아난다 그가 지나는 곳의 풀들은 그의 장대 키가 묻히도록 무성히 솟아오르고 온갖 백과(百果)들도 다투어 그 맛과 곱기를 자랑하며 흐드..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17
[선시] 죽음(竹音) / 임보 죽음(竹音) / 임보 초당(草堂)의 대밭 그늘 곁에 열흘쯤 앉아 소리를 기다려도 울릴 기색이 없다 차를 끓이는 동자에게 어이된 일인가 물으니 속기(俗氣)가 어리면 소리가 숨는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자리를 떠 한 서너 마장 갔을까 그제서야 무슨 향내 같기도 한 청음(淸音)이 내 코와 귀..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16
[선시] 죽화(竹花) 죽화(竹花) / 임보 초당(草堂)이란 자는 대나무 밑에서 살고 있는데 댓이파리 하나만 잡고도 소리를 잘한다 그가 만든 소리는 관현(管絃)의 세상 위의 것이어서 뭇 짐승들도 다가와 갸웃거리는데 어떤 때는 천리 밖의 봉황도 날아들어 그의 대밭에 깃들기도 한다 그런 때는 대들도 달빛 같..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15
[선시] 독 / 임보 독 / 임보 무악(巫岳)이란 늙은이는 아침에 마당 동편에 놓여 있는 백 개의 독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놓고 오후엔 서편 마당의 독을 다시 동편 마당으로 옮겨 놓기를 날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이 무슨 쓸모없는 짓거린가고 물으니 내 하는 일은 무언가고 무악(巫岳)이 되묻는다. 글을 쓰는 일이라고 대답..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06
[선시] 지팽이 / 임보 지팽이 / 임보 산길을 가는데 머리를 쳐들고 혀를 낼름거리며 가는 길을 막는 놈이 있다 보아하니 한 자 남짓한 독사(毒蛇)다 짚고 있던 지팽이를 들어 허리를 쳤더니 두 동강이 나고 만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갈라진 몸뚱이가 두 놈으로 되살아나 식식거리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달려드는 놈을 지.. 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2007.02.04